[Journal]입춘, 파리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사랑


갈바넘(Galbanum)이라는 도전

입춘을 만들 때부터 알고 있었다. 이 향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거라는 것을. 갈바넘을 메인 노트로 한 향수를 한국에서 내놓는다는 건, 어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다. 갈바넘은 까다로운 향료다. 생생하게 핀 여린 잎과 줄기를 표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강렬하고 그린한 향취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패출리와 베티버까지 더해지면서 향 자체가 무거워진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부드럽고 촉촉한 향과는 정반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춘을 개발한 이유가 있었다. 2024년 9월, 파리 메종&오브제에 서울 중소기업 대표로 참가하게 되었을 때, 문득 든 생각이 있었다. 우리의 기존 라인업이 너무 아시아 시장, 특히 한국과 일본, 중국의 선호도에만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닐까? 파리에서 우리 향수를 처음 선보이는 자리. 조금은 과감하고 강한 향취를 가진 것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입춘이었다.

문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보통 전시회나 박람회 물품은 미리 배송이나 항공 화물로 보내놓는데, 입춘은 정말 막바지까지 조율하느라 결국 내 캐리어에 직접 넣고 핸드캐리로 가져가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일이었다. 만약 공항에서 캐리어를 잃어버렸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파리 거리에서 발견한 의외의 연결고리

파리에 처음 발을 디딘 순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거리를 걸으며 맡은 공기의 냄새가 입춘과 비슷했던 것이다. 입춘의 컨셉은 봄의 시작, 즉 풀을 뽑았을 때 느껴지는 신선한 뿌리 내음이었다. 처음에는 촉촉한 흙의 느낌으로 시작하지만, 캐모마일이 패출리와 베티버로 이어지면서 건조하고 고급스러운 부드러운 향취로 변해간다. 그런데 그 향이 파리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것이었다. 더 놀라운 건 파리 사람들의 향수 사용 문화였다. 한국에서 느껴지던 길거리의 향수 냄새와는 차원이 달랐다. 훨씬 진하고, 훨씬 강렬했다. 담배를 많이 피우는 문화 때문에 그것을 마스킹하려고 향수를 많이 뿌리는 걸까? 어쨌든 그들에게는 강한 향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았다.


메종&오브제에서의 압도적 반응

전시장에서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입춘 샘플을 완판했다. 심지어 샘플 예약주문까지 받을 정도였다.

"Oh wow, you guys are like the Korean Aesop!"

프랑스 관람객이 입춘을 맡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 순간 나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쉽다. 그 말을 녹취로 남겨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생 우리 사무실 벽에 액자로 걸어두고 싶은 말이었는데. 그들은 입춘이라는 절기의 개념을 이해해서 좋아한 것이 아니었다. 순수하게 그 향취 자체를 사랑했다. 갈바넘의 그린함과 베티버의 깊이, 그리고 레더가 더해져 만들어내는 복합적인 향을 그들은 즉시 알아봤다.

흥미로운 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유럽의 다른 국가, 호주, 북미에서 온 관람객들은 우리의 다른 향들을 더 선호했다. 오직 프랑스, 그것도 파리 사람들만이 입춘에 열광했다. 그들이 평소 사용하는 고급 향수와 비슷한 결이면서도, 갈바넘이라는 그린한 노트가 주는 색다른 지점이 그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다른 향은 거의 보지도 않고 오직 입춘만을 가져갔다.

"와, 역시 예상했던 대로 프랑스 맞춤으로 향기를 만들길 잘했어."

내부에서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파리에서의 성공은 우리의 직감이 옳았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한국에서의 현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의 현실은 달랐다. 2025년 3월, 삭스타즈 양말 편집샵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서 입춘을 정식으로 한국에 소개했다. 입춘 절기에는 조금 늦었지만, 봄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로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매출은 저조했다.

"너무 강해요."

"이게 뭔 냄새예요?"

"향이 무거운 것 같은데..."

한국 고객들의 반응은 파리에서의 열광과는 정반대였다. 갈바넘 자체가 호불호가 갈리는 향료인데, 거기에 베티버까지 더해지니 어떤 이에게는 고급스러운 향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너무 강해서 부담스러운 향이 된 것이었다. 예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실제 결과로 받아들이니 흥미로웠다. 같은 향인데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날 수 있다니.



입춘 포뮬러와는 무관하지만 평소 조향하며 촬영한 사진입니다.


밸런스에 대한 고민

우리는 무엇보다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향이 독특하고 강하기만 하다고 좋은 게 아니라고 여긴다. 독특한 취를 가지면서도 밸런스를 잘 잡아야 한다는 게 우리의 철학이다. 입춘 역시 무작정 튀고 강한 향은 아니다. 페티그레인의 신선함이 갈바넘의 강렬함을 완화시키고, 캐모마일이 전체적인 조화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는 그 향취 자체가 어려운 것 같았다. 한국인들은 체취가 없고 부드럽거나 촉촉한 향들을 선호한다. 입춘은 촉촉한 뿌리 내음으로 시작하지만 베티버로 넘어가면서 건조해진다. 풀을 뽑았을 때의 그 신선한 촉촉함에서 점점 마른 향으로 변해가는 이런 변화가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고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향과 문화, 그리고 취향의 경계

입춘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향수는 단순히 좋은 냄새를 내는 것 이상이라는 것. 그것은 문화와 취향, 그리고 각 지역의 생활 패턴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파리 사람들이 입춘을 사랑한 이유는 단순히 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의 일상,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의 냄새, 그들이 추구하는 미학과 입춘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한국에서의 저조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일상과 미학에는 맞지 않는 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건 아니다. 다만 향수라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문화적인 산물인지를 다시 한번 깨달았을 뿐이다.



입춘이 남긴 질문들

지금도 가끔 입춘을 맡으면서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누구를 위한 향을 만들어야 할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서 보편적인 취향에 맞춰야 할까, 아니면 우리만의 독특함을 고집해야 할까? 입춘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는 향인 것 같다. 한국적이면서도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어쩌면 그것이 입춘의 진짜 매력일지도 모른다. 갈바넘과 베티버, 그리고 캐모마일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흙의 이미지. 그것은 분명 어떤 이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향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향이기도 하다. 

입춘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절기 컬렉션의 첫 번째 향으로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이다. 파리에서의 열광과 한국에서의 냉담함 사이에서, 입춘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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